작가의 철학을 담는 그림책

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19-09-18 18:01:02

작가의 철학을 담는 그림책

―『창비어린이』가 추천하는 2019 상반기 그림책

 

폭넓고 색다른 시야로 그림책을 만나는 자리! 2019년 『창비어린이』 가을호(66호)에서는 다양한 현장에 몸담은 세 명의 전문가가 모여 2019년 상반기에 출간된 국내외 그림책 중 함께 살펴보면 좋을 책들을 고르고, 다채로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작가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일곱 권의 책을 비평하고, 최근 그림책의 창작 경향까지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 참여자: 조성순(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자) 김중석(그림책 작가, 그림책 전시 기획자), 천상현(그림책 기획자, 그림책상상·학교 대표)

* 아래 추천평은 발췌하여 수록한 것입니다. 전문은 『창비어린이』 2019년 가을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어린이>초등 전학년

방정환 글, 김동성 그림, 길벗어린이

 

시골 쥐를 따라 함께 걸으며 100년 전 서울 풍경을 만나다!

 

천상현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이솝 우화를 100여 년 전에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어 놀랐어요. 최근 우리 옛이야기를 현대화해 보자는 의식을 가지고 노력 중인 그림책 작가들이 있거든요. 옛이야기나 옛것 등 우리가 가진 자료에서 다음 세대한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골라 자신만의 그림 방식으로 해석하면, 그림책의 문학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김중석 방정환 선생의 글이 그림책에 바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맛깔나서 놀랐어요. 그리고 김동성 작가처럼 리얼리즘 표현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이 국내에 정말 귀한 것 같아요. ‘이걸 다른 누가 그릴 수 있을까?’ 하면 생각이 잘 안 날 정도로요. 인물들의 의상도, 길거리의 간판도, 뭐 하나 허투루 표현한 게 없어요. 

조성순 전래동화, 민담 등 여러 장르의 이야기를 성인과 어린이 독자를 모두 포용하는 그림책으로 재현하는 방식의 모델이 될 수 있겠네요. 작가들이 옛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그림책 작업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풍선 다섯 개』

어린이>초등 전학년

김양미 지음, 시공주니어


"다섯 식구가 따로 살게 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마음’을 다루는 다정한 그림책

 

천상현 현대 가족의 분리 문제, 특히 부모의 이혼을 겪은 아이들의 심리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

잖아요. 작가가 이 주제를 다루기로 결정한 뒤에 어떻게 시각화할지도 고민이었을 텐데, 심플한 라인 드로잉과 곰인형 등의 상징 덕분에 여러 감정이 담담하게 잘 어우러졌다고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아이들도 심각하게 표현되지 않았어요.

김중석 사물을 통해 상징체계로 주제를 드러내는 담백함이 좋았어요. 어떤 때는 글이 지시하고, 또 어떤 때는 그림이 보여 주는 방식도 재미있었고요. 그리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긴 욕조나 방의 구조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전문 그림 작가는 오히려 시도하지 못하는 방식인데, 김양미 작가가 적절하게 과감한 표현을 했다고 생각해요.

조성순 아무래도 동화 작가로서 그림책 작업을 하실 때 그림보다 언어로 먼저 표현하고픈 욕구가 컸을 듯한데, 쉽지 않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내신 걸로 보입니다. 그림을 적당한 밀도로 앉힌 덕분에 아이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절제되어 묻어나더라고요. 그리고 그림에서 일부분의 색감만 살려 두었잖아요. 그 색감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매미』

어린이>초등 5~6학년

숀 탠 지음, 풀빛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그림책

 

김중석 이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에 했던 직장 생활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어요. 매미라는 곤충의 특성을 빌려 와 오랫동안의 땅속 생활과 잠깐 동안의 영광을 표현한 게 재미있었어요. 나중에 매미가 날개를 쫙 펼치고 날아가는 장면에서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천상현 보통 옥상 모서리에 서 있는 장면은 삶을 포기하려는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그다음 장면에서 매미가 자연스럽게 껍질을 벗고 날아가는 모습으로 반전 드라마가 펼쳐져서 통쾌해요. 그림책이 전개되는 내내 오른쪽 면에만 그림을 배치하다가 옥상 장면에서부터는 양쪽 면에 그림이 가득 펼쳐져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죠. 앞 면지나 뒷 면지도 의도된 표현들로 치밀하게 채워져 있고요. 그런 연출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조성순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말끔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지는 못하시는 것 같아요.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죠.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역량이 뛰어난 분이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 참 감사합니다.

 

 

 

『수상해』

어린이>초등 1~2학년

슷카이 지음, 창비

 

일상을 재발견하는 기발한 상상력!

 

천상현 아이들은 사소한 것들도 다 다르게 보려고 하는 특성을 잘 표현했어요. 맨 끝에 ‘두근두근’ 글자를 가득 채운 장면에서도 글자 하나를 거꾸로 뒤집어 두었라고요. 잘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운 건데, 요즘처럼 손가락이 안 보이는 수준으로 SNS를 넘겨 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꼼꼼히 읽기를 유도하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김중석 전체적으로는 ‘수상해’라는 한 단어를 끝까지 끌고 가는 단순한 스타일로 그렸는데, 아이들한테는 공감하기 쉬운 소재인 만큼 복잡한 표현은 없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가령 주인공이 이것저것 다 수상해하는 모습을 만화적인 칸 분할이나 생각 풍선으로 표현한 부분은 그림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체와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이끄는 건 아주 좋았어요.

조성순 결국 창작물 속에 ‘나만의 것’이라는 코드를 심어야 하는데요. 그림책에 필요한 하나의 코드를 찾자면 ‘유머’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상해』에는 어린이 독자라면 너도나도 공감할 만한 유머가 들어 있어요. 실제로 딱 주인공만 한 어린아이를 가진 학부모들이 이 그림책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아이의 유머 코드를 딱 맞춰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개다』

어린이>초등 1~2학년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대한민국 대표 그림책 작가 백희나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조성순 백희나 작가는 전작들을 통해 이미 스컬피 작업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올라섰죠. 그런데 『나는 개다』에서는 표정과 동작이 한층 더 다채로워요. 구슬이의 얼굴을 부각하기도 하고 엉덩이와 뒷다리만을 보여 주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연출을 배분한 덕분에 집중도가 높아지더라고요. 엄마를 만났을 때와 배를 드러내고 자는 장면, 똥을 누는 장면 등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천상현 백희나 작가의 작업은 우리 정서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루어진다고 봐요. 요즘은 반려견의 혈통과 몸값까지 따지는 상황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70~80년대에 우리의 골목골목을 채웠던 풍경과 개들의 족보가 불분명한 상황 등이 잘 묘사되어 ‘나는 개다’라는 표현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구슬이가 엄마와 마주쳤을 때의 그 표정이 정말 압권이지 않나요? 여기서 빵 터지는 게 책의 백미를 장식해요.

김중석 구슬이의 목줄을 놓친 페이지를 보면 한 장면을 위해 다양하게 화면 연출을 시도한 흔적이 느껴져요. 대사를 손글씨로 표현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가 계속 자신을 혁신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무슨 일이든지 하다 보면 힘이 들고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인데,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밤의 숲에서』

어린이>초등 4~6학년

임효영 지음, 노란상상

 

밤의 숲을 건너 새로 태어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조성순 저는 이 작품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큰 변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그림책에서 죽음을 다룰 때는 대개 슬펐거든요. 항상 울어야 하고. 그렇게 슬픔의 정서를 유지했는데 이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좀 더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천상현 전체적인 연출이 세련됐어요. 연필 작업은 자칫하면 그리다 만 느낌이 날 수도 있는데 완성도 있게 정리했고, 색도 절제해서 사용한 덕분에 컬러풀한 것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 보여요. 노인이 돼서 죽는다는 것,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 자체가 슬프고 어려운 얘기잖아요. 그걸 자신만의 판타지 형식으로 담담하게 잘 풀어냈어요.

김중석 이제껏 시도가 적었지만 그림책으로 노인 세대와 공감의 접점을 늘리는 기획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림책 독자로서 노인 세대가 부상하고 있잖아요. 긴 글을 읽긴 어려운 상황에서 그림책은 접근하기도 쉽고, 공감하기도 쉬운 매체예요.

 

 

『100 인생 그림책』

어린이>초등 전학년

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사계절

 

살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100컷으로 보는 인생

 

조성순 저마다 공감되는 부분을 하나씩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은 책입니다. 군데군데 숨겨 둔 모티프를 발견해 내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매 시기의 인생을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한 덕택에 더욱 직관적으로 해석하게 되죠.

김중석 내러티브를 형성하기 위해 장치들을 여러 개 쓴 점이 눈에 띄어요. 사람을 토끼로 형상화하거나 삶의 중간중간에 나무딸기 잼 모티프를 절묘하게 관통해 두었어요. 일단 완성된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아니라, 그림 작가와 글 작가가 소통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상현 하이케 팔러가 “산다는 건 정말 스트레스 넘치는 일이지.” 등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덕에 글도 솔직하고 재미있게 와닿아요. 1세부터 100세까지라는 내러티브가 있긴 하지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서가에 꽂아 두고 나이대가 바뀔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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